메이지 시대의 서양화가. 일본 최초의 파리 살롱전 입선화가. 고세다 호류의 아들, 에도 출신.
서양화 화공(畵工)으로 불린 고세다 호류(五姓田芳柳)의 손에 이끌려 12살 때 요코하마의 찰스 워그맨 문하에 들어갔다. 반년 뒤에 39살의 다카하시 유이치(高橋由一)도 제자로 입문해 함께 서양화를 배웠다. 일찍부터 신동 소리를 들었으며 17살에 독립해 20살 미만에 화숙을 차리면서 일가를 이뤘다. 1876년 공부(工部)미술학교가 설립되었을 때 아사이 주(淺井忠), 고야마 쇼타로(小山正太郞), 마쓰오카 히사시(松岡壽), 다카하시 겐키치(高橋源吉) 등과 같이 입학해 안토니오 폰타네지의 가르침을 받았다. 학교생활은 1년만에 자퇴하고 그해 열린 제1회 내국권업박람회에 <아베카와(安倍川)의 후지산>을 출품해 양화부문의 최고상인 봉문상(鳳紋賞)을 수상하며 일약 이름을 떨쳤다. 이로 인해 메이지 천왕의 초상을 그렸으며 또 천왕의 여행에도 수행화가로 발탁됐다. 이 무렵 야마모토 호스이(山本芳翠)가 도불하자 자신 역시 세계적 화가를 꿈꾸며 1880년에 프랑스로 건너갔다. 파리에서는 레옹 보나에 사사하며 도불 2년째인 1882년 살롱전에 <화가 드비비에의 초상>을 출품해 일본인 최초로 입선했다. 이후 프랑스에서 작품을 제작, 판매하는 생활을 하다 1890년 미국을 거쳐 귀국했다. 이후 메이지(明治) 미술회 창립에 관여하고 청일 전쟁에 종군하는 등의 활동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