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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틀
  • 가와무라 기요오 [ 川村淸雄 ]
  •   
생몰년
1852-1934
한자
川村淸雄
이름
かわむら きよお Kiyoo Kawamura
메이지 시대의 서양화가로 10년에 걸쳐 프랑스와 이탈리아 유학했다. 에도 출생.
조부는 나가사키 부교(奉行) 등을 역임한 막신(幕臣). 조부의 훈도 아래 막부말기의 문인화가 다노무라 조쿠뉴(田能村直入 1814-1907)에게 문인화를 배웠다. 유신 이후 초창기 서양화가인 다카하시 유이치(高橋由一), 가와카미 도가이(川上冬崖)에게 서양화를 배웠다. 1871년 도쿠가와 집안 장학생으로 미국으로 건너갔고 이어 프랑스, 이탈리아에 체류하며 서양화 수업을 쌓았다. 파리 시절에는 카미유 코로의 아틀리에를 찾아가 직접 지도를 받기도 했다. 1876년에 이탈리아로 건너가 베니스 미술학교에 입학했다. 이때 대장성의 장학금을 받게 돼 귀국 후 한때 대장성 인쇄국에 근무했다. 이후 화숙을 차려 이시카와 긴이치로(石川欽一郞), 오다 가즈마(織田一磨) 등의 제자를 지도했으며 메이지(明治) 미술회의 창립에 참가했다. 메이지 미술회가 해산된 뒤에는 2세 고세다 호류(2世五姓田芳柳), 혼다 긴키치로(本多錦吉郞)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도모에회(巴会)를 설립해 백마회(白馬會), 태평양화회(太平洋畵會)와 나란히 활동했다. 이 무렵 막부 말기에서 유신 초기에 걸쳐 정치가로 활동한 가쓰 가이슈(勝海舟 1823-1899)에게 실력을 인정받아 그의 집에 화실을 꾸미고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1896년 도쿄미술학교에 서양화과가 설립될 때 초빙을 거부했다. 구로다 세이키(黒田清輝)와 구메 게이치로(久米桂一郎) 등이 신정부 지지파인 사쓰마번과 사가번 출신이고 자신은 막신 출신이란 이유에서였다.

<예복 유품(かたみの直垂)> 1899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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