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신(幕臣)의 아들로 태어난 사무라이로 막부 말기에 막부군을 따라 종군한 적이 있다. 막부가 해체된 직후에는 마지막 쇼군인 도쿠가와 요시노부(德川慶喜 1837-1913)를 따라 시즈오카(靜岡)까지 내려갔다. 그림을 누구에게 배웠는지 확실치 않다. 도쿄로 이름이 바뀐 뒤 고향으로 돌아와 《도쿄명소도(東京名所圖)》 시리즈 등 우키요에 풍경화를 제작에 주목을 받았다. 특히 빛의 명암, 역광 효과 등을 정교하게 구사한 그림은 '광선화(光線畵)’라고도 불렸다. 1881년에 삽화가 든 주간 풍자잡지 『마루마루친분(團團珍聞)』에 입사해 사회적 사건을 다뤘다. 1885년 이후는 목판화보다 석판화, 동판화를 이용한 삽화 제작에 몰두했다. 『마루마루친분』를 퇴사한 뒤에는 화숙을 열어 후학을 가르쳤으며 청일 전쟁 때에는 전투장면을 정교한 채색판화(니시키에, 錦繪)로 제작한 시리즈를 간행했다. 대표적인 그림으로 <오가와 강가 제1교의 원경(大川岸一之橋遠景)> <신바시(新橋) 스테이션> <아사쿠사 다리에서 본 료고쿠 대화재両国大火浅草橋> <전기를 사용한 평양성 공격도(平壌攻撃電気使用之図)> <눈을 돌리는 기계(眼を廻す器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