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가학인 이시다 심학(石田心學)을 배운 위에 유학, 국학 등을 익혔다. 10대 말에는 근왕주의 여류가인(歌人)이자 여승인 오타가키 렌게쓰(大田垣蓮月)이 들어가 훈도를 받았다. 이무렵 일본 남화와 야마토에(大和繪) 등을 익혔다. 1861년 나가사키를 처음 여행하면서 중국 문인화를 접하고 문인화 세계에 빠져들게 됐다. 메이지 유직후 혼란기에는 4년간 고베 미나토가와(湊川) 신사, 나라 이시카미신궁(石上神宮) 등지의 신관을 지내기도 했다. 신불분리령으로 신사가 황폐화되어 교토로 돌아온 뒤 문인화 제작과 여행으로 생을 보냈다. ‘만권의 책을 읽고 만리의 여행을 한 것을 그림의 뿌리로 삼는다’는 신조로 매년 여행을 하며 직접 체험한 자연을 바탕으로 한 산수화를 그렸다. 에도의 마지막 문인화가로 불렸으며 스스로 자긍심도 높아 1916년 문전(文展)에 초대되었으나 결국 출품하지 않았다. 산수화 이외에 생일이 같아 존숭했던 소동파 등의 인물화도 많이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