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일본화 탄생의 주역 중 한 사람. 본명은 사토오사(長鄕). 호는 쇼엔(勝園), 주간사이(十雁齋), 곳키사이(克己齋), 스이게쓰가(醉月畵) 등을 썼다. 에도 출신.
부친은 가노파 출신의 하마다(浜田藩) 번의 어용화사. 그로 인해 에도 고비키초(木挽町) 가노파 집에서 태어났다. 12살에 정식으로 가노파에 입문했으며 이때 평생 교우를 나눈 가노 호가이(狩野芳崖)를 만났다. 스승인 막부 어용화사 쇼센인 가노 마사노부(勝勝川 狩野雅信)로부터 일자를 배령 받아 독립하며 다다쿠니(雅芳)를 화명으로 썼다. 막부 말기 혼란기때에는 해군병학교에 제도사로 근무하며 투시도법, 서양화법을 익혔다. 이후 페놀라사와 오카쿠라 덴신에게 높은 평가되며 새로 발족한 도쿄미술학교 교수로 초빙됐다. 오카쿠라 덴신이 투서 사건에 휘말려 해직될 때 함께 학교를 나와 일본미술원을 창립했다. 도쿄미술학교 시절 훗날 가호(雅邦) 사천왕으로 불린 시모무라 간잔(下村觀山), 요코야마 다이칸(橫山大觀), 히시다 슌쇼(菱田春草), 사이고 고게쓰(西鄕孤月) 등을 지도했다. 이름난 작품으로 <월야산수도> <용호도> <백운홍수도(白雲紅樹圖)>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