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바 리그스티카 미술학교에서 판화를 전공한 뒤 1867년 열린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동판화로 은상을 수상했다. 이후 이탈리아 국립은행에 들어가 화폐제조를 담당하다 일본 메이지 정부로부터 파격적인 조건을 제안받고 1875년 일본에 건너왔다. 신생 일본의 대장성 지폐국에서 화폐 제작을 지도하는 한편 직접 우표도 제작했다. 또한 미술학교에서 인쇄, 판화기술을 지도했으며 한편으로 동판 인쇄술을 사용해 고위 관리들의 초상화를 다수 제작했다. 특히 1889년 제국헌법 제정 직후에는 메이지 천왕의 초상을 인쇄물로 대량 제작해 전국에 배포함으로서 천왕의 이미지 정착과 확산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고용 기간이 끝난 뒤에도 막대한 종신연금을 받으며 일본에서 거주하며 일본 미술품을 대량으로 수집한 것으로 유명하다. 일본에서 사망한 그는 도쿄 아오야마 외국인 묘지에 묻혔다. 그가 남긴 1만5천여 점의 미술품은 유언장에 따라 이탈리아로 옮겨져 현재 제노바 시립키오쏘네미술관에 수장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