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 초의 양화가. 원래 성은 아사다(淺田). 호류는 호며 이름은 덴지로(伝次郞), 요시지로(芳次郞), 다이스케(大輔) 등 여럿을 썼다. 고세다는 나중에 자신이 창안한 성.
교토 아사카사의 기슈번(紀州藩) 번저에서 무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15살 무렵 우키요에 화가 우타가와 구니요시(歌川国芳) 문하에 입문해 우키요에를 배웠고 이후 가노파 화가에게서 가노파 화법도 익혔다. 서양화는 나가사키 유학 시절에 처음 보았다. 이후 요코하마에서 우키요에 화가들이 그리던 요코하마 니시키에(錦繪)에 대항해 붓으로 비단에 유화 물감 등으로 초상화와 풍경화를 그린 이른바 요코하마에(横浜絵)을 외국인 상대로 판매했다. 요코하마에서는 찰스 워그맨과 교류하며 그로부터 서양화 기법을 배웠고 도쿄가 문화의 중심이 되자 도쿄 아사쿠사로 옮겨 공방을 차리고 초상화가로 인기를 끌었다. 이후 메이지 천왕의 초상을 그려 전국적인 지명도를 얻었으며 1877년에 열린 제1회 내국권업박람회에 <아베카와 후지(阿部川富士)를 출품해 양화부문 최고상을 수상했다. 1890년 미국에 건너가기도 했으나 귀국한 뒤 안질로 실명했고 곧 사망했다. 제자로 파리에 유학한 야마모토 호스이(山本芳翠)와 히라키 마사쓰구(平木政次) 등을 가르쳤다. 대표작으로 <메이지천왕 부상병위문도> <외국인 남성의 일본복장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