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 초기의 양화가. 이름은 히로시(浩), 메이지 유신 이후 유이치로 이름을 바꿨다. 호는 남천(藍川), 화음도인(華陰逸人).
사노번(佐野藩)의 무사집안 출신으로 에도에서 출생. 어려서부터 번주 주변의 신변잡사를 담당하는 하급 무사로 일하며 21살 때 처음 서양 석판화를 보고 매료됐다. 그러나 그무렵만 해도 서양화 기법을 배울 곳이 없어 영국의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의 특파원겸 삽화화가로 당시 요코하마에 와 있던 찰스 워그맨(Charles Wirgman)에게 드나들며 서양화를 익혔다. 메이지 유신 이후 천회루(天繪樓)란 화숙을 열고 제자를 가르치는 한편 작품을 제작했다. 1876년 공부미술학교가 설립되고 이탈리아인 안토니오 폰타네지가 교수로 초빙되었을 때 집으로 찾아가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기도 했다. 1879년에 원로원의 의뢰로 메이지 천왕의 초상을 그리기도 했다. 대표작으로 >오이란(花魁)> <연어(鮭)> <시바 고칸 상(司馬江漢像)> <두부(豆腐)> <야마가타(山形) 시가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