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안 초기의 관료. 다치바나노 나라마로(奈良麻呂)의 손자로 804년 사이초(最澄), 구카이(空海)와 함께 견당사를 따라 당나라에 들어갔다.
이때 중국에서 서예 솜씨를 인정받아 관리 이전에 서예가의 대접을 받았다. 귀국 이후 840년 다지마노 곤노카미(但馬權守)에 임명됐으나 842년 죠와(承和)의 난 때 이즈(伊豆)로 유배가는 도중에 죽었다. 사가(嵯峨) 천왕, 구카이(空海)와 함께 삼필로 일컬어진다. 추정작으로 《이토내친왕원문(伊都內親王 願文)》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