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미술에서 시작해 전쟁 이후 사회적 현실에 뿌리를 둔 비판, 풍자 작품을 주로 선보였다. 구마현 다카오자키(高崎) 출신.
어려서 도쿄로 와 1922년 15살 때 태평양화회(太平洋畵會) 연구소를 다녔다. 이때 평생 화우가 된 이노우에 조자부로(井上長三郎), 아미 미츠(靉光)와 교우하기 시작했다. 1928년, 1930년 협회전의 출품과 입선을 이유로 태평양화회에서 제명되었으며 함께 제명된 이노우에 등과 함께 홍원회(洪原會)를 결성했다. 홍원회의 발전적 해체 뒤에 노바(NOVA) 미술협회, 신인화회(新人畵會)에 차례로 참여하며 모더니즘 미술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했다.
1945년 3월 도쿄 공습으로 인해 전쟁 이전에 제작한 작품이 모두 불타버렸다. 전쟁 이후 자유미술협회를 통해 주로 작품 활동을 펼쳤다. 이 무렵 '광기와 폭력, 원폭의 시대에 회화가 현실의 미술이 되기 위해 사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선언하며 작품 경향을 바꾸었다. 1963년 제7회 일본국제미술전 우수상을 수상했다. 말년에 실명 상태에서 폐암으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