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초로 초현실주의 서적 번역, 전쟁 이후 미술평론가, 기획가로 활동. 도야마(富山) 출신.
부친은 의사. 1922년 모친의 급사로 의대 진학을 단념하고 이듬해 게이오의숙(慶應義塾) 문학부에 입학했다. 친구이자 훗날 소설가가 된 나가이 다츠오(永井龍男)의 추천으로 동인지 '야마마유(山繭)'에 참가했다. 동인 중에 훗날 문예평론가가 된 고바야시 히데오(小林秀雄)도 있었다. 재학 중에 영국 유학에서 돌아온 지도교수 니시와키 준자부로(西脇 順三郎) 아래서 서구 모더니즘과 초현실주의를 처음 접했다. 이 무렵 윌리엄 브레이크, 랭보 외에 엘뤼아르, 브르통, 짜라 등 동시대 프랑스 문인의 작품에 몰두했으며 니시와키 준자부로(西脇 順三郎)가 중심이 된 초현실주의 시집 『향기로운 화부여(馥郁タル火夫ヨ)』 출판에도 참가했다. 졸업후 1930년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와 회화』를 번역함으로써 일본에 처음으로 본격적인 초현실주의 문헌을 소개했다. 1934년 신조형 미술협회 설립의 이론적 지주가 됐으며 1936년에는 자신이 중심이 돼 아방가르드 예술가클럽을 결성했다. 1937년 '해외초현실주의 작품전'을 앙드레 브르통, 폴 엘뤼아르 등의 협조로 기획, 개최했다. 1941년 치안유지법 위반혐의로 체포돼 8개월 간 구금된 뒤 기소 유예로 석방됐다. 전쟁 이후에 미술평론가로 본격적으로 활동하며 1951년에는 화구상 다케미야(竹見屋)의 후원으로 다케미야 화랑을 열어 무료로 젊은 작가들에게 발표의 장을 제공했다. 이곳을 통한 신진 작가로는 구사마 야요이(草間彌生), 이케다 마스오(池田満寿夫), 가노 미츠오(加納光於) 등이 있다. 1958년 파리을 찾아 앙드레 브르통을 방문햇으며 이듬해 일본 미술평론가연맹 회장으로 선출됐다. 1966년에는 일본을 방문한 호안 미로와 함께 공동시화집 『미로의 별과 함께』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