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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틀
  • 기타와키 노보루 [ 北脇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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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
1901-1951
한자
北脇昇
이름
きたわき のぼる Kitawaki Noboru
1930년대 일본 초현실주의 미술 운동을 대표하는 화가. 프랑스 유학. 나고야 출신.
소년기를 교토의 숙부 집에서 보낸 이래 교토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동지사(同志社)중학 재학 중, 화가의 길을 꿈꾸며 학교를 중퇴하고 가노코기 다케시로(鹿子木孟郞)의 화실을 다녔다. 1930년 쓰다 세이후(津田靑楓) 화숙으로 옮겼으며 2년 뒤 이과전(二科展)에 처음 입선했다. 1933년 쓰다 화숙의 해산 후, 젊은 화가들과 독립미술교토연구소를 만들고 도쿄 독립미술협희의 고지마 젠자부로(児島善三郎), 이토 렌(伊藤廉), 하야시 다케시(林武) 등을 지도자로 초빙해 지도를 받았다. 이해 파리도쿄신흥미술전의 교토 순회전을 본 것을 계기로 신일본양화협회를 결성하고 본격적으로 아방가르드 미술을 접했다. 1937년 독립미술협회 전시에 <땅두릅(独活)>을 출품하면서 초현실주의 작품을 처음 선보였다. 이어 1939년 후쿠자와 이치로(福沢一郎)가 중심이 되어 설립한 미술문화협회에 참가하며 본격적으로 초현실주의 운동에 뛰어들었다. 이후 교토 전위미술 운동의 중심적 존재로 활동하며 후쿠자와 이치로와 함께 초현실주의 운동를 대표하는 화가로 인식됐다. 1940년대 들어 초현실주의를 좌익운동과 동일시한 당국의 감시 아래 초현실주의와 동양의 주역, 선, 만다라, 불교 등과의 융합 내지는 수학적 자연주의와의 융합을 화면에 통합시키고자 한 작품을 선보였다. 1946년 일본아방가르드미술가클럽을 결성해 작품보다 강연, 토론 등에 열정을 기울이기도 했다. 1949년에 그린 <쿼바디스>는 전쟁 이전과 전쟁 중 그리고 이후의 자신의 삶을 반영한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1951년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쿼바디스> 194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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