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꺼운 마티에르가 특징. 장미, 돈키호테 등을 반복해 그렸으며 생전에 개인전을 열지 않는 기행 등으로 유명했다. 본명은 아사이 미노루(淺井實). 오사카 출생.
대대로 기슈 도쿠가와가(紀州 德川家)을 받든 무사집안 출신으로 조부 때 오사카로 나왔다. 부친은 공장 경영과 무역업으로 한때 성공했으나 실패한 후 이혼했다. 청소년기를 조부모가 있는 히로시마에서 보내며 조모와 사이가 나빠 평생 가족 얘기를 입밖에 내지 않았다. 1919년 상경, 혼고(本鄕)양화연구소에 들어가 기초를 익혔다. 1926년 제13회 이과전에 입선했으며 1931년 풍광회(風光會)에 들어갔다. 1936년 문부성 미술전람회에 5백호 대작 <언덕 위>를 출품, 최고상인 문부대신상을 수상하며 일약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전쟁 중에 전쟁 기록화를 그렸으며 종전은 상해에서 맞이했다. 1947년 오코치 노부히로(大河內新敬), 가와바타 미노루(川端実), 스다 고쿠타(須田剋太) 등과 신수회(新樹會, 1976년 해산)를 결성하고 이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이 무렵부터 장미, 돈키호테, 전선(電線) 풍경, 시인 초상, 부동명왕 등 몇몇 테마를 두꺼운 마티에르를 사용해 반복 작업했다. 만년에 루머티즘으로 구생했으며 생애 한 번도 개인전을 열지 않았고 화집도 발간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