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일본 미래파의 선구. 화가 외에 아동 삽화, 소설가, 극작가, 연출가, 디자이너 무대미술가로도 활동. 도쿄 출신.
아버지는 군의(軍醫) 출신의 의사였으나 일찍 돌아가셨다. 어려서 어머니의 스승 우치무라 간조(内村鑑三)에 사사, 그리스도교에 심취했다. 중학 2학년 때 어머니의 권유로 부부의 벗사(婦人之友社)에서 간행하는 『소녀의 벗(少女之友)』에 단편소설을 연재했다. 1915년에는 일본수채화전에 입선. 도쿄제국대학 철학과에 입학한 뒤로 그리스도교와 니체에 열중했다. 원시 기독교 연구를 위해 도쿄제국대학을 중퇴하고 1922년부터 1923년 베를린에 유학했다. 유학 중 수채화로 개인전을 열기도 했으나 당시 베를린을 중심으로 소개되고 있던 다다이즘, 러시아 구성주의, 독일 신즉물주의, 이탈리아 미래파 등 다양한 신사조를 경험, 견문했다. 귀국 후에 야나세 마사무(柳瀨正夢), 오가타 가메모스케(尾形亀之助) 등과 전위미술단체 MAVO를 결성해 활동했으며 기관지도 발간했다. 1928년 결성된 전일본무산자예술동맹에 참가해 프롤레타리아 문학과 연극 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했다. 1930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검거되었고 이해 12월 석방된 뒤에 정식으로 일본 공산당에 가입했다. 이후 전위 극단을 중심으로 연극계에서 활동하면서 무대예술가로서의 면모를 발휘했다. 전후에 극단 책임자 자격으로 1960, 1962년 두 번 중국을 방문해, 중국 연극계와의 교류를 시도했다. 1970년 『연극적 자서전』을, 1971년 『무라야마 도모요시 희곡집(村山知義戯曲集)』(상, 하)을 간행했다. 1974년 400회 연출을 기념해 테아트로 연극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