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측메뉴타이틀
  • 한국 서화가
  • 중국 서화가
  • 일본 서화가
  • 서화인장
  • 도록
  • 도서
  • 국내외 미술관 링크
  • 미술계 관련자료
타이틀
  • 노구치 야타로 [ 野口弥太郎 ]
  •   
생몰년
1899-1976
한자
野口弥太郎
이름
のぐち やたろう Noguchi Yataro
독립미술협회를 중심으로 활동한 일본 서양화가, 예술원회원. 도쿄 출신.
아버지는 제일은행 상무이사 출신의 뱅커. 부친의 전근으로 소년 시절을 부산, 인천, 도쿄, 나가노, 고베 등지에서 보냈다. 허약한 체질 때문에 일찍부터 화가의 꿈을 키웠다. 1920년 도쿄미술학교 입학에 실패한 뒤 가와바타화학교(川端畵學校) 양화부를 2주간 다닌 적이 있다. 이후 독학으로 그림을 익혔다. 부친이 세운 요기기 대저택에 아틀리에도 있어 젊은 시절의 고지마 젠자부로(児島善三郎), 마에다 간지(前田寬治), 미기시 고타로(三岸好太郎) 등이 날마다 아지트처럼 모여 지냈다. 1922년 이과전에 <여인>이 첫 입선했고 1924년에도 <소녀와 정물> 등 3점이 입선했다. 1926년에서 1930년까지 협회에 회원으로 참가해 이후 이과전과 이 협회를 중심으로 작품을 발표했다.
1929년부터 1933년까지 프랑스 유학에 올라 그랑 쇼미에르에 적을 두었다. 프랑스에서도 독자적인 화풍은 버리지 않았다. 파리 시절 살롱 도톤느, 살롱 데 장데팡당에 출품했다. 1931년 살롱 도톤에 <항구의 카페> <벨쿠르 광장>이 나란히 입선했으며 <항구의 카페>는 프랑스 정부가 구입해 일본에도 대서특필됐다. 귀국 후에 이과회 대신 독립미술협회을 택해, 가입한 뒤 이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요요기 저택이 폭격에 불타면서 파리시절 제작한 작품을 포함해 약 500점이 재가 됐다. 1952년 일본대학 예술학부 교수로 취임했으며 1964년 마이니치(每日)예술상을 수상했다. 1973년 문부대신상을 수상했으며 1977년 일본예술원 회원이 됐다.(*)

<벨쿠르 광장> 1931
  

SNS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