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정토진종 사찰인 고도쿠지(光德寺) 절 주지의 차남. 17살 때인 1917년 상경해 가와바타(川端)화학교에 들어가 후지시마 다케지(藤島武二)에 사사했다. 이듬해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했으며 재학 중에 르누와르와 세잔에 경도됐다. 졸업 후 동급생과 장미문회(薔薇門會)를 결성하고 개인전도 개최했다. 1923년 파리로 건너갔으며 1924년 오베르 슈르오와즈에 있던 포비즘화가 모리스 브라망크를 방문하면서 아카데미즘과 결별했다. 또 당시 열린 유트릴로전을 보며 화풍이 결정적으로 변했다. 이후 도시 일각의 풍경을 테마로 한 독자적인 화풍이 형성됐다. 이들 작품은 1926년 귀국해 이과전과 1930년협회 전시를 통해 일본에 소개됐다. 1927년 재차 파리로 건너가 작업하다 결핵에 걸려 31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930년대 사업가 야마모토 하츠지로(山本発次郎)가 정력적으로 작품을 모았으나 2차대전 때 공습으로 인해 상당수 작품이 불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