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키요에 우타가와(歌川)파를 마지막으로 계승한 화가이자 판화가. 풍경화도 그렸지만 미인도로 이름을 떨쳤다. 본명은 하지메(一), 도쿄 출신.
9살 때 부친 사업실패로 소학교를 중퇴하고 극장 간판제작자 집에 사환으로 들어갔다. 이후 인쇄회사에서 활자공으로 일하며 일본화가 나카야마 슈코(中山秋湖)에게 일본화 기초를 배웠다. 도안부로 옮긴 뒤 회사 고문의 소개로 가부라기 기요카타(鏑木淸方)에 입문했다. 가부라기는 막말의 우키요에 화가 쓰키오카 요시토시(月岡芳年)의 문하인 미즈노 도시카타(水野年方)의 제자. 1912년 14살 나이로 손화회(巽画会) 전시에 첫 출품해 입선했으며 이듬해에 1등상을 수상했다. 1915년에는 문전에도 입선했으며 또 우키요에 판화의 근대화를 추진하던 와다나베 판화점에서 우키요에식 판화를 제작, 선보이기도 했다. 우키요에 전통을 이은 신판화(新版畵) 운동을 통해 히구치 고요(橋口五葉), 가와세 하스이(川瀨巴水) 등과 교류했다. 이 무렵 회사를 그만두고 신문 삽화로 생계를 유지하며 작품 제작에 전념했다. 1922년 평화기념도쿄박람회에 <손가락>이 2등상을 수상했다. 1927년 화숙을 열어 후진을 양성했으며 1932년에는 인물화 재건을 위해 청청회(靑靑會)를 설립했다. 1948년에 일본예술원상을 수상했으며 1958년에는 일본예술원 회원으로 추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