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쇼(大正) 시대에 활동한 서양화가이자 시인. 서양화가 야마모토 가나에(山本鼎)의 이종사촌 동생. 오카자키(岡崎) 출신.
소학교 교사인 부친을 따라 고치(高知), 교토(京都) 등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결혼전 모친이 소설가 모리 오가이(森鷗外) 집에서 일한 인연으로 가이타라는 이름을 그가 지어주었다는 설이 있다. 10대부터 보들레르, 랭보를 읽고 시를 짓는 조숙함을 보였다. 그림에의 관심은 14살 때 프랑스 유학을 떠나는 사촌형 야마모토 가나에가 그의 집에 머물면서 서양화구 한 벌을 준 것이 계기가 됐다. 교토부립 제1중학교를 졸업한 1914년 상경해 고스기 호안(小杉放庵)에 하숙하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해 제1회 이과전에 <정원의 소녀>가 입선했다. 이후 독일 표현주의와 상징주의를 거쳐 프리미티즘의 거칠고 야성적이며 또한 퇴폐적 분위기의 작품을 연속 발표했다. 1917년 제4회 재흥일본미술원전에 대작 <거지와 여인>을 출품, 회원으로 추천됐다. 방탕한 생활과 빈곤, 실연의 좌절 속에 결핵성 폐염을 앓다가 스페인 감기로 인해 삶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