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초의 슈르레알리즘 화가이자 시인. 본명은 요시오(龜雄). 승명은 료쇼(良昌). 하루에는 화명이자 통칭(通稱). 후쿠오카 구루메(久留米) 출신.
부친은 정토종 선복사(善福寺)의 주지이다. 병약한 소년시절을 보냈으며 중학에 들어가 구루메의 지역화가에서 서양화의 기초를 배웠다. 17살 때 중학교를 자퇴하고 상경해 태평양화회(太平洋畵會) 연구소에 들어갔다. 이듬해 일본수채화 연구소로 옮겨 이시히 햐쿠테이(石井柏亭)에 사사했다. 친구의 자살로 일시 귀향한 뒤 부친이 죽자 승적에 들어 주지직을 계승했다. 1918년 불교 연구를 위해 다이쇼(大正) 대학에 입학했으나 병으로 중퇴했으며 이후부터 그림에만 전념했다. 1919년 이과전에 입선한 뒤 본격적으로 작품 생활을 했다. 1920년대 후반부터 20년대 초반에 걸친 유럽 모더니즘의 전파 시기에 불교를 소재로 한 큐비즘, 표현주의 계열을 작품을 제작했다. 이 무렵 파울 클레의 작품을 접하고 내면을 서정적 정신을 자각, 작품 세계의 테마로 삼았다. 또 유럽에서 귀국한 도교 세이지(東鄕靑兒), 아베 곤고(阿部金剛)와 교류하며 자극을 받아 슈르레알리즘 경향의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1930년 자기 작품의 해제를 시로 적은 작품집 『고가 후루에 화집』을 발간했다. 만년의 고가는 소설가 가와바다 야스나리(川端康成)과 특히 가깝게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