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쇼, 쇼와 초기의 일본 화가. 1940년 이후 고전 영화의 고증가로 활동했다. 교토 출신.
에도시대 상급무사 집안 출신으로 유복한 소년시대를 보냈다. 미술에 대한 관심과 천식을 이유로 교토부 제1중학고에서 교토시립 미술공예학교로 전학한 뒤 다케우치 세이호(竹内栖鳳)에 사사했다. 재학중 무라카미 가가쿠(村上華岳)에게 솜씨를 인정받았으며 이후 교토시립 회화전문학교에 진학, 졸업했다. 1918년 무라카미 가가쿠, 쓰치다 바쿠센(土田麦僊) 등이 문전을 거부하고 새로 설립한 국화창작협회의 첫 번째 전시에 <비스듬히 꽂은 빗(横櫛)>을 출품해 탐미적이며 퇴폐적인 시대 분위기의 상징적 표현이란 찬사를 받았다. 1924년 국화창작협회의 정식 회원이 돼 여성의 관능미를 사실적으로 그려 다이쇼(1912-1926)시대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인기 화가의 한 사람으로 꼽혔다. 1926년 국화창작협회 제5회전 출품작을 쓰치다 바쿠센이 ‘불결하다’는 이유로 진열 거부하면서 국화창작협회를 탈퇴하고 신수사(新樹社)를 결성했다. 1940년 영화감독 미조구치 겐지(溝口健二)와의 교류를 통해 영화계로 나아가 영화의 시대고증 연구가로 활동했다. 1953년 그가 고증을 맡고 미조구치 감독이 찍은 『우게츠 모노가타리(雨月物語)』가 베네치아 국제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했다. 본인 역시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의상디자인상 후보로 지명됐다. 이후 200여편 이상의 영화의 고증과 의상디자인에 관여했다. 미조구치 감독의 사망이후 미술계로 돌아왔으나 고령, 건강상의 이유로 큰 활약은 보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