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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틀
  • 이시가키 에이타로 [ 石垣榮太郞 ]
  •   
생몰년
1893-1958
한자
石垣榮太郞
이름
いしがき えいたろう Ishigaki Eitaro
아메리카 이민자의 아들로 뉴욕을 무대로 사회주의 계열의 화가로 활동했다. 와카야마(和歌山)현 출신.
미국으로 이민간 아버지가 불러 9살 때 미국에 건너갔다. 캘리포니아에서 접시닦이, 청소부로 일하며 가타야마 센(片山潛) 등의 사회주의 사상에 공감했다. 지방 화가의 화숙을 거친 뒤 1914년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미술학교에 입학했으나 연애 사건이 생기면서 뉴욕으로 이주했다. 뉴욕에서는 아트 스튜덴츠 리그를 다니며 존 슬론의 지도를 받았다. 1917년 가타야마 센과 뉴욕에서 재회화며 그가 중심이 된 사회주의 연구회 즉 재미일본인사회주의자단에 가입했다. 이 무렵 여성 사회운동가인 마가렌 생어와 여성 저널리스트 아그네스 스메들리 등과도 교류했다. 1923년 미국 거주 일본인화가, 조각가들의 모임인 화조회(畵彫會)를 결성해 작품을 발표했으며 1925년에 인디펜던트 전에 출품한 작품이 매스컴에 널리 소개되며 미국화단에 정식 데뷔했다. 이 무렵 사회주의 작가, 예술가, 지식인 모임인 존 리드 클럽에 가입하게 됐고 그곳에서 멕시코 화가 오로스코, 다마요 등과 사귀었다. 1936년 스튜어트 데이브스를 서기장으로 한 아메리카 미술가협회에 참가해 전시회부분 위원으로 뽑혔다. 공황이후의 불황기에 연방미술계획(Federal Arts Project)를 통해 뉴욕 할렘재판소의 벽화 작업을 맡았으나 작품 완성 이후 시민권이 없는 게 문제가 돼 작품이 철거됐다. 1940년대말 매카시 선풍이 불면서 FBI의 심문을 받았고 이어서 1951년 국외추방당했다. 귀향한 일본에서는 한동안 작품 활동을 접은 채 잡지 『중앙공론』에「아메리카 방랑기 40년」을 연재하기도 했다.(*)

<보너스 행진>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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