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지인 프랑스에서 활동한 판화가. 17세기 동판기법의 하나인 메조틴트 기법을 부활시킨 공로가 있다. 요코하마 출신.
은행가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외교관을 꿈꾸었으나 병약한 체질 때문에 화가의 길을 택했다. 1911년 21살 때 아오이바시(葵橋) 양화연구소에 들어가 구로다 세이키(黑田淸輝)에게 데상 지도를 받았고 이어 혼고(本鄕) 양화연구소에서 오카다 사부로스케(岡田三郞助)와 후지시마 다케지(藤島武二)에게 유화를 배웠다. 이 무렵 브레이트, 뭉크, 르동 등의 작품을 접하고 서구미술에 대한 동경심을 키웠다. 판화는 1913년 도쿄대학과 와세다대학의 문학 동인지인 『성배(聖杯)』와 단가(短歌)잡지 『수옹(水甕)』의 표지 제작을 맡으며 눈을 뜨게 됐다. 또 1914년 일본에 온 버나드 리치로부터 동판화 기술을 배우면서 본격적인 판화기법 연수를 위해 프랑스 유학을 계획했다. 1918년 파리에 도착한 뒤 한동안 정양을 위해 남불에서 보낸 뒤 1921년 다시 파리로 올라와 라울 뒤피를 만나면서 당시 프랑스 화단에 영향력이 컸던 판화단체 소시에테 데 펭트르 그라뷔르 앙데방당((Societe des Peintres Graveurs Independants)을 소개받고 가입했다. 이후 살롱전 등에 출품하며 17세기 유럽의 전통 동판화기법인 메조틴트 기법을 연구, 부활시키는 데 몰두했다. 메조틴트 기법으로 제작한 판화 작업은 여러 공모전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1927년에 도쿄에서 열린 제1회 불란서 현대미술전에 후지타 쓰구하루(藤田嗣治)와 함께 초대, 출품됐다. 1935년 메조틴트기법 부활의 공로로 프랑스 정부로부터 뇌종 도네르 훈장을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뒤에도 귀국하지 않고 지방을 전전하며 난을 피했다. 전후에 다양한 동판화 작업을 선보이며 유럽 내에서 명성을 쌓았다. 1972년에 프랑스 국립주조국에서 일본인 화가로는 호쿠사이, 후지타 쓰구하루에 이어 3번째로 그의 초상을 새긴 메달이 발행됐다. 1980년 교토국립근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이 열렸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참가하지 못한 채 그해 12월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