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은 동대 출신의 제3고등학교 의학부(오카야마 대학 의학부) 교수. 자신도 어려서 의사가 되기를 꿈꾸었다. 그러나 거듭되는 시험 실패로 노이로제까지 걸렸고 그림을 통해 이를 회복하면서 화가의 길로 방향을 바꾸었다. 늦은 나이에 고향에서 목탄 데생 등의 기초를 익힌 뒤 1914년 26살 때 상경해 혼고(本鄕) 회화연구소의 오카다 사부로스케(岡田三郞助) 아래로 들어갔다. 2년뒤 가와바타(川端) 화학교로 옮겨 후지시마 다케지(藤島武二)의 지도를 받았다. 1921년에 프랑스 유학길에 올라 아카데미 모데른에 들어갔다. 1923년 이곳에서 그의 화력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페르낭 레제를 만났고 이후 큐비즘 세계에 빠져들었다. 1933년 파리 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해서 도쿄의 중앙 화단과는 거리를 둔 채 오카야마의 다마시마(玉島, 현 구라시키(倉敷)시)에 아틀리에를 마련하고 큐비즘에 기초한 독자적인 추상 세계를 추구했다. 전쟁 이후에는 A,G,O(아방가르드 오카야마) 그룹을 결성해 지방의 신진작가를 지도하기도 했다. 1956년 뇌출혈로 사망할 때까지 꾸준히 작업했음에도 불구하고 파리시대 그림은 그대로 두고 귀국했고 또 1944년과 1954년 두 차례에 걸친 수해로 인해 작품 대부분을 잃어버리게 돼 현재 전하는 그의 그림은 50여점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