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 30년대 문전(文展)과 거리를 둔 청년작가 연합회인 국화(国畵)창작협회를 중심으로 활동한 일본화가. 본명은 신이치(震一).
오사카 의사 집안출신으로 7살 때 고베 친척 집에 맡겨져 성장했다. 부모의 사망으로 무라카미(村上) 집안에 양자로 들어갔으며 15살 때 교토시립미술공예학교에 입학해 화가의 길을 택했다. 졸업 이후에 교토시립 회화전문학교에 들어가 전통 분위기의 교토에서 일본화를 익혔다.
졸업 후 문전을 중심으로 활동하다 쓰치다 바쿠센(土田麦僊), 사카키바라 시호(榊原紫峰), 오노 짓쿄(小野竹喬), 이리에 하코(入江波光) 등의 젊은 화가들과 함께 파벌주의의 화단 행태를 거부하며 서양미술과 동양미술을 융합한 새로운 회화 창조를 목표로 국화(国畵)창작협회를 결성했다. 국화 창작협회의 정기전에서 <히다카가와 기요히메도(日高河清姫図)> <나부도> 등을 발표해 신예작가로 주목을 받았다. 이 무렵 천식이 발병해 유럽 견문여행을 포기하고 반은둔 상태로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1923년 교토에서 고베로 거처를 옮긴 뒤에 개성적인 산수화와 서양화 재료를 사용한 불화 등을 제작했다. 1939년 천식으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