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도예가, 화가. 다이쇼(1912-1926) 시대 시라카바(白樺) 파를 중심으로 한 민예 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홍콩 태생.
부친은 홍콩 관리였으나 나중에 변호사가 됐다. 출생 직후 어머니의 사망으로 외조부가 있는 일본에 보내졌다. 외조부는 교토 제3고등중학교와 히코네 중학교의 영어교사였다. 4년 뒤 아버지가 재혼하면서 다시 홍콩으로 되돌아갔고 아버지의 전근으로 싱가폴로 이주해 살았다. 청소년기에 런던에 유학, 슬레이드 미술학교와 런던 미술학교에서 에칭을 배웠다. 당시 유학 중인 다카무라 고타로(高村光太郞)을 알게 됐다. 이 무렵 그리스 출신의 일본연구가 라프카디오 헌(小泉 八雲, Lafcadio Hearn)의 책을 통해 일본을 동경하게 돼 1909년 재차 일본에 건너왔다. 도쿄에서는 우에노에 기거하며 동판화 지도를 통해 생활했다. 이 무렵 사토미 돈(里見弴),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등과 교류하며 시라카바(白樺) 동인이 됐다. ‘예술을 통한 인격 도야’를 예술의 목표로 삼은 이유로 쉽게 민예 운동에 공감했다. 민예 운동파와의 교류에서 런던 유학 경험이 있던 도예가 도미모토 겐키치(富本憲吉)와 알게 돼 1911년 나란히 6세 오가타 겐잔(尾形乾山)의 문하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도예를 익혔다. 1920년 하마다 쇼지(濱田庄司)와 함께 런던으로 돌아가 세인트 아이브스에 가마를 만들고 영국 전통 도자와 고대의 슬립 웨어(Slipware)의 재현을 시도했다. 1934년 재차 일본에 돌아와 야나기의 일본민예관 설립 운동에 동참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세계 각지를 순회하며 전통 도예의 가치와 일용품으로서의 민예 정신을 소개하는 일에 힘썼다. 1963년 대영제국훈장을 수장했으며 1977년 런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미술관에 대규모 회고전을 열었다. 리치는 1916년과 1920년 2번 조선을 방문해 달항아리 등을 구입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