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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틀
  • 도미모토 겐키치 [ 富本憲吉 ]
  •   
생몰년
1886-1963
한자
富本憲吉
이름
とみもと けんきちTomimoto Kenkichi
건축가 출신의 도예가. 야나기 무네요시와 함께 민예운동을 전개. 나라현 이쿠마(生駒) 출신.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미술에 관심을 보이며 가족의 반대를 뿌리치고 도쿄미술학교에 입학, 건축과 실내 장식을 전공했다. 재학 중에 만돌린에 열중하면서 후지다 쓰구하루(藤田嗣治), 미나미 군조(南薰造) 등과 친교를 맺었다. 또 심취해 있던 윌리엄 모리스의 영향으로 졸업 이전인 1908년에 자비로 영국 유학을 떠나 당시 일고 있던 아트 앤 크래프트 운동을 직접 체험했다. 또 날마다 빅토리아 앤 앨버트 미술관를 드나들며 세계 각지의 문양을 모사하면서 연구했다.영국에 있을 때 건축가 니이노미 다카마사(新家孝正 1857-1922)를 만나 사진사로 인도를 함께 여행했다. 이 여행은 훗날 인도 사라사 문양을 개발하는 계기가 됐다.
귀국후 잠시 건설회사에 취직하기도 했으나 곧 퇴사했다. 이 무렵 일본에 온 버나드 리치와 사귀며 그가 열중하던 도예 작업를 지켜보며 도예에 관심을 갖게 됐다. 1915년 귀향해 집안에 가마를 설치하고 독학으로 도자를 연구했으며 이 무렵 일본 옛 도요지와 조선을 방문하기도 했다.
1926년 재차 상경해 하마다 쇼지(濱田庄司), 가와이 간지로(河井寬次郎) 등과 함께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가 제창한 ‘일본민예관설립 취지서’를 연명, 발표했다. 이듭해 제작한 채색 자기가 큰 호평을 받으며 도예가로 서서히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1935년에 제국미술학교 교수가 된 데 이어 1944년 도쿄미술학교 교수로 취임했다. 전쟁 이후에는 교수직을 버리고 교토로 내려가 작업하면서 채색 안료 위에 금은을 동시에 입히는 이로에금은(色繪金銀) 기법을 완성했으며 양치(羊齒)라고 불린 독자 문양도 개발했다. 1950년 도쿄시립미술대학 교수로 영입됐고 1955년에는 채색자기 부분의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로 지정됐다.(일본에서는 통칭 인간 국보라고 부른다) 1961년에 문화훈장을 수상했다.

<채색금은 양치문 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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