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일본화가. 장식성 위주의 그림과 달리 격정적인 대화면 작업으로 유명하다. 와카야마(和歌山) 출신. 본명은 쇼타로(昇太郞)
중학재학시절 요미우리신문 주최의 역사화 공모전에 입선한 것을 계기로 화가의 길을 택했다. 1904년 백마회 양화연구소에 들어가 2년간 수학한 뒤 다시 태평양회 연구회에 들어갔다. 이곳은 3개월 만에 그만두고 시사잡지 『도쿄 펀치』와 만화잡지 『도쿄 해피』 『소년 펀치』 등에서 편집을 맡다가 국민신문사에 들어가 삽화를 담당했다. 이무렵 미술전에 작품을 출품하면서 활동하다 1913년 미국 유학을 시도, 보스톤에 건너갔다. 보스톤 미술관에 걸려있는 일본 전통화인 에마키(繪卷) 그림을 보고 큰 감명을 받으면서 일본화에 매진하기로 결심하고 귀국했다. 귀국해서는 히라후쿠 햐쿠스이(平福百穂 1877-1933)의 무성회(无聲會)를 거쳐 산호회 등지에 들어가 일본화를 익혔다.
재건된 일본미술원전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실내 장식 위주의 당시 경향과 달리 미국에서 본 대형 캔버스화를 일본화 양식으로 재구성한 작품을 선보여 주목을 끌었다. 1928년에 자신이 주재해 설립한 청룡사(靑龍社) 전시에 나루토(鳴門)의 거친 파도를 16미터가 거대한 병풍(2폭)에 묘사한 <나루토>를 선보여 일약 화명을 떨쳤다. 일본화의 새로운 면모를 개척한 공로로 1931년 아시히문화상을 수상했으며 1935년에 제국미술원에, 1937년에 제국예술원 회원이 됐다. 그러나 이들은 태평양 전쟁이 시작된 1941년 모두 사임했다. 생전에 자택에 설립한 기념관은 1990년 시에 기증돼 현재 오타구립(大田區立)류시기념관으로 운영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