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쇼(大正 1912-1926) 시대에 활약한 근대 서양화가. 일본 화단에 전위미술인 포비즘을 도입한 선구자로 평가된다. 이와테(岩手)현 출신.
지방 화물선주 집안에서 태어나 소년기에 오시타 도지로(大下藤次郎 1870-1911)의 『수채화 입문』을 보고 화가의 꿈을 키웠다. 상경해 와세다 중학에 입학해 백마회 제2연구소에 들어가 정식으로 소묘를 배웠다. 22살 때 임제종의 포교승 소카츠(宗活)선사를 따라 샌프란시스코에 갔으나 당시 일어난 지진 영향으로 생활이 곤란해져 몇 개월 만에 귀국했다. 이듬해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가에 입학했으나 당시 주류를 이룬 아카데믹한 화풍보다 새로 전해오는 후기인상주의, 포비즘에 매료됐다. 대표작 <나체미인>은 졸업하던 1912년의 작품으로 특이한 포즈와 강한 윤곽선, 보통의 여성미와 거리가 먼 표현 등으로 반아카데미즘 선언작으로 손꼽힌다. 이후 反아카데미즘을 표방한 동인단체인「퓨젱(fusain, 목탄을 뜻하는 불어)」회 창립에 참가해 활동했다. 1914년에서 16년까지 잠시 귀향해 작업하다 다시 상경, 이과전(二科展)에 본격적인 큐비즘 경향의 작품을 출품했다. 1919년 신경쇠약으로 가나가와의 사가자키(茅ヶ崎)로 거쳐를 옮긴 뒤 간헐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다 1927년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