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바야시 고케이(小林古径), 마에다 세돈(前田靑邨)과 함께 다이쇼, 쇼와의 3걸로 불렸다. 니혼바시에서 요리요정 야쿠샤쿠(百尺)을 경영하는 집안의 4남으로 태어났다. 13살 때 제실(帝室)박물관에서 열린 호류지(法隆寺) 금당벽화 모사를 보고 감격했으며 이어 요코야마 다이칸(横山大観), 히시다 슌소(菱田春草), 고보리 도모토(小堀鞆音)의 작품에 감동하면서 화가가 되기를 결심했다. 1898년 고보리 도모토 문하에 들어갔으며 세돈 등이 결성한 자홍회(紫紅會, 이후 홍아회(紅兒會)로 바뀌었다)에 참가했다. 도쿄미술학교에 진학한 뒤에는 곧 중퇴하고 오카쿠라 덴신(岡倉天心)의 주선으로 나라에 유학해 전통 회화를 수업했다. 1907년부터 일본미술원 전시인 원전(院展)에 출품했으며 이후 재건된 일본미술원에서도 주요 작가로 활동했다. 1914년 무렵부터 에도후기의 승려이자 서예가인 료칸(良寛)에 매료돼 글씨와 함께 선염이 아닌 선 중심의 회화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고자 했다. 1920년 료칸의 생을 그린 <오합암(五合庵)의 봄>을 발표해 주목을 끌었다. 이후 고전적 주제와 선묘를 중심으로 한 작품을 지속적으로 발표해 일본화의 신고전주의 경향을 구축한 화가란 평을 들었다. 1934년 제실기예원(帝室技藝員)이 되고 이듬해에 다마(多摩)미술대학 교수로 취임했다. 1944년 도쿄미술학교 교수가 됐으며 1948년에 문화훈장을 수장했다. 1958년에는 사단법인이 된 일본미술원의 초대이사장으로 추대됐다. 제자로 오구라 유키(小倉遊亀), 이와하시 에이엔(岩橋英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