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은 대장성 관세국장 겸 요코하마 세관장을 지냈다. 형 다케로(武郞)와 동생 사토미 돈(里見 弴)은 모두 소설가. 학습원 중등과시절 시가나오야(志賀直哉, 소설가), 다무라 히로사다(田村寛貞, 동양음악가), 구로키 산지(黒木三次, 귀족원의원, 백작), 산조 긴테루(三条公輝, 귀족원의원, 공작) 등과 문예서클을 결성해 문예평론 등을 발표했다. 문학에 몰두하면서 어학에 흥미를 느껴 도쿄외국어학교 이탈리어학과에 진학했다. 졸업후 후지시마 다케지(藤島武二) 집에 기숙하며 사사했으나 1년이 안 돼 이탈리아 유학길에 올랐다. 로마에서는 아카데미 드 프랑스에서 카롤로스 뒤랑의 지도를 받았으며 한편으로 국립로마미술학교를 다녔다. 1906년에 이탈리아에 온 형과 함께 이탈리아 각지와 유럽을 여행한 뒤 파리로 건너갔다. 파리에서는 그랑 쇼미에르에서 라파엘에 사사했으며 이해 열린 세잔 회고전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파리시절 오기하라 모리에(荻原守衛). 다카무라 고타로(高村光太郎), 미나미 군조(南薫造), 우메하라 류사부로(梅原龍三郎), 후지다 쓰구하루(藤田嗣治) 등과 교류했다. 귀국해서 1910년에 미나미 군조와 백화사(白樺社)주최 귀국전을 열었고 이 해 창간된 『시라카바(白樺)』에 창간 동인으로 참가해 이를 거점으로 문필 활동을 전개했다. 『시라카바(白樺)』를 통해 세잔과 로댕을 소개하는 한편 유럽체류 일기, 에밀 베르나르의 『회상의 세잔』 등을 발표, 번역했다. 1913년 이과회(二科會) 창립에 참가해 이듬해 제1회전부터 1936년 일수회(一水會) 창립까지 주로 이과회를 중심으로 작품을 발표했다. 1921년 화가 니시무라 이사쿠(西村伊作)와 이시이 하쿠테이(石井柏亭), 여류문인 요사노 쇼코(与謝野晶子) 등과 함께 문화학원을 설립해 교단에 서기도 했다. 1935년 제국미술원 회원이 된 것을 계기로 이과회를 탈퇴했고 이후 작품은 일수회를 통해 발표했다. 1956년 이후 가나가와 현립근대미술관을 비롯한 전국 미술관에서 회고전이 열렸으며 1964년 문화공로자로 선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