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 시대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서양화가. 호는 고하(香葩). 후쿠오카 구루메(久留米) 출신.
부친은 구루메 번의 번사. 서양화가 사카모토 한지로(坂本繁二郞)은 소학교 동창으로 평생 친구로 지냈다. 메이젠(明善)중학교 시절인 1899년 화가가 되려고 단신 상경해 부동사(不同舍)에 들어가 고야마 쇼타로(小山正太郎)에 사사했다. 이듬해에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해 구로다 세이키(黑田淸輝)의 지도를 받았다. 1902년 고향에서 올라온 사카모토, 모리타 쓰네토모(森田恒友) 등과 함께 군마현 묘기산(妙義山) 등지를 여행하며 많은 스케치를 남겼다. 1903년 재학생 신분으로 제8회 백마회 전시에 일본신화를 소재로 한 <황천의 비라 언덕(黄泉比良坂)>와 고대 인도의 철학자를 그린 <자이미니(闍威弥尼)>를 출품해 제1회 백마상을 수상했다. 1904년에 부동사 시절의 연인 후쿠다 다네(福田たね) 등과 함께 지바 남부의 메라(布良)에 머물면서 대표작 <바다의 보물(海の幸)>를 그렸다. 이 그림은 제9회 백마회 전시에 출품돼 큰 호평을 받았다. 1905년 이바라기 지쿠세이(筑西)에 이주해 살았고 이때 장남 란도(蘭童, 여류화가인 모친의 성을 이어받은 후쿠다 란도는 나중에 음악가가 됐다)을 낳았으나 끝내 후쿠다와 정식 결혼은 하지 않았다. 1907년 부친의 위독 소식을 듣고 귀향했고 이후 두 번 다시 도쿄에 돌아오지 않았다. 고향에서는 가족과 충돌 끝에 집을 나와 아마쿠사(天草), 사가(佐賀) 등지를 방랑하다 지병인 폐결핵의 악화로 후쿠오카 병원에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