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루메 번의 중급무사집안 출신. 어려서 그림 재주를 보여 신동 소리를 들었다. 소학교 시절 서양화가이자 미술 교사였던 모리 미요시(森三美)의 집을 드나들며 서양화를 처음 배웠다. 요절한 천재화가 아오키 시게루(靑木繁)는 소학교 동창생이다. 1902년 아오키와 함께 상경해 화숙 부동사(不同舍)에 들어갔으며 또 태평양미술회 연구소도 다니며 서양화를 익혔다. 1907년 제1회 문전에 입선한 이듬 해 만화잡지 『도쿄 퍽(Tokyo Puck)』에 취직해 안정된 생활 속에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렸다. 1912년 제6회 문전에 출품한 <어스름 무렵>을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夏木漱石)가 높이 평가하면서 화단에 이름이 알려졌다. 1914년 이과회(二科會) 창립에 참가했으며 1921년에는 파리로 건너가 샤를 게랑에 사사했다. 이 무렵부터 자연을 소재로 사실을 넘어서 시적 상상력이 환기시키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1924년 귀국해서 고향에 정주할 것을 결심하고 야메(八女)에 아틀리에를 마련한 뒤에 고향의 풍경과 말을 소재로 한 그림을 주로 그렸다. 은둔 생활로 야메의 신선이란 말을 들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우메하라 류사부로(梅原龍三郞), 야스이 소타로(安井曾太郞)와 함께 양화계의 거장 대접을 받았다. 1954년에 요미우리 미술상을 수상했으며 1956년에는 문화훈장을 수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