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은 가고시마 번의 번의(藩醫). 19살 때 상경해 하시모토 가호(橋本雅邦)에게 일본화를 배웠으나 곧 백마회에 들어가 서양화를 익혔다. 이후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진학했다. 동급생으로 와다 산조(和田三造), 선배로 아오키 시게루(青木繁), 구마야 모리카즈(熊谷守一) 등이 있다. 큰형이 나쓰메 소세키(夏木漱石)과 친해 그에게 그림 재주를 인정받으며 학생시절에 그의 주선으로 하이쿠 잡지 『호토토기스』의 삽화를 그렸다. 또 소세키의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장정도 직접 의뢰받았다. 그의 소개를 통해 모리 오가이(森鷗外), 다니자키 준이치로(谷崎潤一郞), 이즈미 교카(泉鏡花) 등을 알게 됐으며 이들 책, 소설의 장정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장정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11년 미쓰코시 백화점의 광고화 공모에 아르누보풍의 <차미인(此美人)>을 출품해 1등상을 수상했다. 1915년에는 제작자 와타나베 쇼사부로(渡辺庄三郎)가 이끄는 신판화 운동에도 참가해 <욕실의 여인> 등을 제작해 주목을 받았다. 이후부터 적극적으로 우키요에 연구에 몰두하며 스즈키 하루노부(鈴木春信)의 미인도와 우카가와 히로시게(歌川広重)의 《동해도53차(東海道五十三次)》를 복각 작업을 떠맡기도 했다. 또 자신이 직접 제작자로 나서 각수와 인쇄공을 지휘해 미인도 판화를 다수 제작해 ‘다이쇼(大正)의 기타가와 우타마로(喜多川歌麿)’라고도 불렸다. 대표작의 하나인 <빗질하는 여인>은 이 시기의 작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