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동향 선배이자 사회사업가인 소마 아이조(相馬愛蔵)가 만든 금주회에 들어가 그리스도교에 관심을 갖게 됐다. 또 아이조의 부인 곳코(黑光)를 통해 예술에 대한 지식을 전해들으며 화가의 꿈을 키웠다. 1899년에 상경한 이후 부동사(不同舍)에서 서양화를 배웠으며 1901년 봄 세례를 받은 직후 뉴욕으로 건너갔다. 뉴욕에서 2년간 생활한 뒤 파리로 가 라파엘 코랑 화숙과 아카데미 줄리앙을 다니며 기량을 쌓았다. 1904년 열린 로댕 전시에 감동하고 특히 <생각하는 사람>에 큰 충격을 받아 조각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후 잠시 뉴욕으로 건너갔다가 1906년에 다시 파리로 돌아와 아카데미 줄리앙의 조각부를 다녔다. 이 무렵 때때로 로댕 집을 방문해 직접 그의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 로댕과의 만남을 통해‘조각은 형상 속의 내적인 힘을 표현하는 것이며 그것은 바로 생명’이라는 조각관을 형성하게 됐다. 1908년 이탈리아, 그리스, 이집트를 여행하며 고대 조각을 견학한 뒤 귀국했다. 귀국 이후는 소마 부부가 경영하는 신주쿠 나카노야(中村屋) 근처에 아틀리에를 마련하고 문전 등에 작품을 출품하면서 신예 조각가로 주목을 받았다. 1910년 마지막 작품이 된 <여인>을 완성한 다음 달 객혈과 함께 갑자기 30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이 작품은 제4회 문전에 출품돼 3등상을 수상했다. 요절로 인해 전하는 작품이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