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쇼엔(上村松園), 이토 신스이(伊東深水)와 함께 근대 3대 미인화가로 꼽힌다. 부친은 저널리스이자 막말의 연애소설(人情本) 작가. 13살 때 우키요에 계보의 화가인 미즈노 도시카타(水野年方)에 입문해 판화 밑그림을 읽혔다. 이후 생계를 위해 신문, 잡지의 삽화를 그리며 미술과 문학의 자연스러운 결합을 몸에 익혔다. 이후 평생 문학에 바탕을 둔 그림을 많이 그렸다. 삽화가 시절 소설가 오자키 고요(尾崎紅葉), 이즈미 교카(泉鏡花) 등과 교류하며 이들의 삽화와 표지그림을 그렸다. 이즈미 교카를 만난 1901년에 주변 동료들과 오합회(烏合會)를 결성해 삽화가 아닌 본격적인 작품을 제작했다. 오합회 전시와 문전 입선을 통해 화가로 이름을 알렸으며 1916년에는 유키 소메이(結城素明) 히라후쿠 햐쿠스이(平福百穂) 마쓰오카 에이큐(松岡映丘) 등과 함께 금령사(金鈴社)를 결성했다.
1927년 제8회 제국미술원 전람회(帝展)에 <쓰키지아카시초(筑地明石町)>을 출품해 제국미술원상을 수상하면서 대가(大家) 대접을 받기 시작했다. 평생 지속한 테마는 도쿄의 서민 풍속과 당시풍의 여인들로 그는 인물을 제외한 주제는 거의 그리지 않았다. 1954년 문화훈장을 받았다. 만년을 보낸 가마쿠라 유키노시타(雪ノ下) 자택은 사후에 가부라키 기요타카 기념미술관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