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은 방직업을 일군 사업가이자 기후시 초대시장을 지냈다. 그림은 12살 무렵 수채화를 그리면서 시작했다. 17살 때 상경해 그림을 배우고자 했으나 부친이 ‘게이오에 합격해 한 학기를 다니면 마음대로 해도 좋다’고 해 그 말대로 한 학기를 마친 뒤 말 그대로 학교를 중퇴했다. 이후 교리츠(共立) 미술학교를 거쳐 1900 도쿄미술학교에 입학했다. 동급생에 아오키 시게루(靑木繁), 야마시타 신타로(山下新太郞), 고지마 도라지로(児島虎次郎) 등이 있다. 학교 졸업후 농상무성의 가라후토(樺太) 조사대에 들어가 약 2년간 현지의 지형과 해산물 등을 스케치했다. 1908년과 1909년의 문전에 연거푸 입선했으나 부친에 이어 모친까지 사망하자 귀향했다. 이후 6년을 고향에서 지낸 뒤 재차 상경해 이과전(二科展)에 참가했으며 종전 직전까지 이를 통해 작품활동을 했다. 작품은 작은 나무판에 그린 소품을 고집해 당시의 대작 출품작과 대조를 이뤘으며 더욱이 과작으로 인해 극도의 빈곤 속에 주위의 예술가들에게 도움을 받으며 생활했다. 그럼에도 무욕의 예술가 정신과 태도를 일관해 도시 속의 신선으로 불렸다. 만년에는 자택을 나오지 않은 은둔 생활로 보냈다. 1967년에 문화훈장이 내정되자 이를 거부했고 1972년에 훈3등에 서훈되었을 때도 ‘나라에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다’고 거절했다. 만년의 집(도시마구 지하야 豊島区千早)은 1985년 구마가이 모리카즈 미술관으로 개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