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없다. 꽃과 새, 풀벌레, 물고기를 담은 옛 그림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2011년에
기획했던 '조선후기 산수화전'의 작품들과 대조를 이룬다. 화조화나 산수화나 자연이 그 대상이다. 인간이 사는 곳, 살면서
사랑하는 풍경을 그린 산수화에는 사람이 곧잘 등장한다. 이에 비해 꽃과 새, 풀벌레, 물고기 등의 그림에는 인간이 배제되어 있다.
이들은 사람이나 마찬가지로 같은 풍경 속에 존재하는 생명체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는 마치 산수화가 누정에서 먼 풍광을
끌어들여 즐기는 풍류와 닮았다면, 화조ㆍ화훼도는 자연의 디테일에 근접해서 관상하는 일에 비견할 수 있겠다. 자연의 작은 물상으로 하나하나가 인간의 삶과 호흡하듯 가까운데도, 이들 그림에는 왜 인간이 등장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