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송의 정치가이자 서예가. 자는 원장(元長). 흥화 선유(興化仙遊, 지금의 복건성 선유현) 출신.
1070(희녕熙寧 3년)에 진사가 된 뒤 지방관리를 거쳐 중서사인(中書舍人)에 올랐다. 1102년(숭녕崇寧 원년)에 우상(右相)이 되면서 정권의 중심에 섰다. 정치적으로는 악명이 높았으나 문화 예술에는 천부적 재질을 보였다. 특히 서예, 시, 산문에 뛰어났다.
초기에 채양(蔡襄)에게 사사했으며 심전사(沈傳師), 구양순(歐陽詢) 등의 서풍을 이어 자신의 서체를 완성했다. 글씨는 소식, 황정견, 미불과 함께 북송 사대가로 손꼽힌다. 북송 마지막 황제인 흠종(欽宗) 즉위후 영남(嶺南)으로 유배가는 도중 심주(潭州)에서 죽었다. 대표작으로 <송사(宋史)> <원우당적비(元祐黨籍碑)>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