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송의 정치가이며 문인, 서예가. 자는 군모(君謀), 복건성 선유(仙游)출신. 채경의 종조부(從祖父)이다.
1030년(천성天聖 8년)에 진사에 급제했다. 장주, 서경, 대리 등 지방관직을 거쳐 중앙관료가 돼 한림학사, 단명전학사 등을 지냈다. 충직한 정치가로 이름 높았으며 학식이 뛰어났다. 예술에도 능통했다. 특히 글씨는 북송 4대가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왕희지, 안진경, 유공권 등의 서법을 익혀 해서, 행서, 초서, 예서에 모두 능했다. 대표적인 글씨로 <징심당첩(澄心堂帖> <이도첩(離都帖)> 등이 있다. 저술로 《차록(茶錄)》《여지보(荔枝譜)》 등이 있다. 글씨와 문장 외에 건축에도 능통했다. 천주지사로 있을 때 바다를 가로지르는 만안교(萬安橋, 현재는 낙양교(洛陽橋)로 불린다)를 축조한 것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