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의 정치가이자 서예가. 자는 청신(清臣). 경조 만년(京兆 萬年, 지금의 섬서성 서안) 출신.
개원 22년(734) 진사에 합격한 뒤 4차례나 어사에 임명되었으며 사부 상서와 태자 태사(太子太師)를 지냈다. 사회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애쓴 정치가로 중국사 굴지의 충신이다. 학자 예술가로도 이름 높아 글씨는 초기에 저수량에게 배웠고 이후에 장욱의 필법을 취했다. 당초4대가의 특징을 더해 스스로 안체(顏體)를 완성해 당나라 해서의 모범이 되었다. 천보10년(755) 안록산의 난이 일어났을 때 형 안고경(顏杲卿)과 함께 난을 평정했다. 건중 4년(783)에 재상 노기(盧杞)의 모함으로 이희열(李希烈)에 의해 살해되었다. 해서 대표작은 <다보탑비(多寶塔碑)> <안근예비(顔勤禮碑)> 등이 있으며 행서로는 <제질문고(祭姪文稿)><쟁좌위첩(爭座位帖)>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