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당의 서예가이자 화가. 자는 사통(嗣通). 포주 분음(蒲州 汾陰, 지금의 산서성 만영山西 萬榮) 출신.
대대로 고급관료를 배출한 명문집안 출신으로 태종때의 명신 위징(魏徵)은 외조부다. 측천무후 때 진사에 급제해 황문시랑을 거쳐 태자소보(太子少保)와 예부상서를 지냈다. 글씨는 우세남(虞世南)과 저수량(褚遂良)의 서풍을 따랐으나 스스로 일가를 이뤄 이들과 구양수을 포함해 당초 4대가로 불린다. 그림도 능해 인물, 불상, 화조 등을 잘 그렸다. 현종이 즉위한 뒤 태평공주와 두회정(竇懷貞)의 정변 모략을 알고도 알리지 않아 옥중에서 사약을 받고 죽었다. 글씨 대표작으로 <신행선사비(信行禪師碑)> <행명군명(杏冥君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