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정치가, 문인, 서예가. 자는 백시(伯施). 월주 여요(越州余姚, 지금의 절강성 여요 ) 출신.
당 태종이 개국공신의 초상을 걸어두었던 능연각(淩煙閣) 24공신 중 한 사람이다. 수 양제때 궁에 들어가 사인(舍人)을 지냈으며 당 태종때 비서감, 홍문관 학사 등을 역임했다. 당 태종 시절 덕행, 충직, 박학, 문사, 서한(書翰)의 오절(五絶)로 손꼽힌 명신(名臣)이다. 글씨는 지영에게서 이왕(二王)의 묘지(妙旨)를 깨우친 것으로 전한다. 구양순 등과 함께 초당4대가 중 한 사람이다. 대표작으로 <공자묘당비(孔子廟堂碑)>가 있다. 이는 태종의 명에 의해 재건된 국자감의 공자묘에 세운 기념비나 정관 연간에 일어난 화재로 파괴됐다. 그외 <여남공주묘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