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陳)에서 수(隋)에 걸친 승려이자 서예가. 속성은 왕씨로 법명은 법극(法極), 법호는 영선사(永禪師)이다. 회계 산음(會稽山陰, 지금의 절강성 소흥) 출신.
왕휘지의 7대 후손. 형과 함께 출가해 산음 영흔사에 머물다가 나중에 장안의 서명사로 옮겼다. 가법으로 전하는 왕희지 서체를 익혔으며 필치는 원만하면서 굳세고 수윤(秀潤)한 특징을 보였다. 초서에도 뛰어났다. 영흔사에 머무는 30년 동안 <진초(眞草)천자문> 800여부를 임서해 장강하류 일대의 여러 사찰에 1부씩 나누어 주었다. 가보인 왕희지 <난정서(蘭亭序)>를 소장하다가 태종이 보낸 사신에게 빼앗긴 일로 유명하다. 대표작으로 <진초천자문(眞草千字文)>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