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진의 귀족 정치가이자 서예가, 자는 안석(安石), 진군양하(陳郡陽夏, 절강성 소흥(浙江省紹興) 출신.
명문 귀족인 진군(陳郡) 사씨 집안에서 태어나 관직보다는 유유자적하는 생활을 즐겼다. 관직은 환온의 사마가 됐고 이후 이부상서를 지냈다. 재야에 있을 때 동산 별장에서 왕희지, 손작(孫綽) 등과 어울려 풍류를 즐겼다.조정의 사씨(謝氏) 대신들이 모두 죽은 뒤에 재상으로 복귀했다. 비수(淝水) 전투에서 8만 병사로 100만의 진군(秦軍)에게 대승을 거뒀다. 오랜 기간 동진에 평화와 안녕을 가져다 준 정치가로 유명하나 황제의 시기를 사 광릉으로 피신한 후 병으로 죽었다. 글씨는 왕희지에 사사해 예서, 행서, 초서에 능통했다. 대표 글씨로 <팔월오일첩(八月五日帖)>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