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에서 삼국 위(魏)까지 활동한 정치가, 서예가. 자는 원상(元常). 영천 장사(潁川 長社, 지금의 하남성 허창 河南省許昌) 출신.
황건적의 난 이후 순욱(荀彧)의 추천으로 조조의 신임을 얻었다. 후한 명제가 즉위한 뒤 태부(太傅)에 명해졌다. 오랫동안 대중의 신임을 얻었으며 화신(華歆), 왕랑(王朗)과 함께 삼공이라 불렸다. 종요가 죽자 명제가 친히 송상(送喪)했다. 채옹(蔡邕), 유덕승(劉德升)에게 글씨를 배웠으며 전서, 행서, 해서에 모두 능했다. 소해(小楷)로 이름을 떨쳤고 전서와 해서의 중간 서체는 종요체로 불린다. 종요의 해서는 왕희지 등 많은 서예가가 모범으로 삼았다. 대표적인 글씨로 <선시표(宣示表> <환시첩(還示帖)> <천계직표(薦季直表)>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