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의 서예가. 자는 백영(伯英). 돈황 주천(敦煌酒泉, 지금의 감숙성甘肅省 주천) 출신.
대대로 관리를 배출한 집안 출신으로 부친 장영(張渙)은 왕실 제례를 담당하는 태상(太常)까지 올랐다. 글씨는 처음에 두도(杜度), 최원(崔瑗)에게 초서를 익혔다. 이후 고대 글자와 당대의 글자를 구별, 분리하고 두 글자를 연관지어 변화가 풍부한 새로운 필법을 고안해 초서를 일신하며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평생 출사하지 않고 서예를 연마하면서 글씨 연습으로 인해 연못 물이 검어졌다는 일화를 남겼다. 장초(章草), 비백서(飛白書)에 특히 능했다. 옛부터 초성(草聖)으로 불렸다. 대표적인 장초체 글씨로 <지백첩(芝白帖> <관군첩(冠軍帖)> <욕귀첩(欲歸帖)> 등이 있다. 또 그의 글씨로 전하는 <추량평선첩(秋凉平善帖)> 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