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송의 문인정치가이자 화가. 자는 여가(與可), 호는 소소선생(笑笑先生), 소소거사(笑笑居士) 또는 석실선생(石室先生). 재주 재동(梓州梓潼, 지금의 사천성 면양 四川省綿陽) 출신.
인종 때인 1094년에 진사에 급제했다. 관은 태상박사, 집현교리를 거친 뒤 능주(陵州), 양주(洋州), 호주(湖州 지금의 절강성 오흥) 등의 지방관을 역임했다. 호주와 연관해 문호주라고도 불린다. 그림은 묵죽도로 유명하다. 그림 제작에 앞서 관찰을 중시해 모든 준비가 끝난 뒤 가장 나중에 붓을 들라고 말했다. 농묵과 담묵을 함께 구사한 독자적인 묵죽화 세계를 구축해 묵죽대사(墨竹大師)로도 불렸다. 당대에 사촌 형제인 소식과 함께 시문, 서화로 유명했으며 소식에게 묵죽도를 가르쳐준 것으로 전한다. 대표작으로 <묵죽도(墨竹圖)>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