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시민의 손자. 1670년(강희 9년) 진사에 급제해 호부시랑을 지냈다. 사의화를 잘 그려 왕사의(王寫意)라고 불렸다. 문인이지만 궁정화가처럼 그림을 그렸으며 궁정소장의 서화감정까지 맡았다. 칙찬으로 『패문재서화보(佩文斎書画譜)』편집총재가 돼 100권의 거질을 완성했다. 또 강희제의 총애 아래 강희제 천수를 위한 책인 《만수성전(萬壽盛典)》집 120권 제작에 참가하기도 했다. 시문에도 뛰어나 예림삼절(藝林三絶)로 불렸으며 저서로 『녹대발화록(麓台跋画録)』이 있다. 조부와 함께 누동파(婁東派)의 창시자로 불리며 청의 중, 후기 산수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대표작으로 <방황공망산수도(仿黃公望山水圖)> <방고극공산수도(仿高克恭山水圖)> <ㅡ방운림설색산수도(仿雲林設色山水圖)>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