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말의 서화가. 자는 장공(長公), 호는 이주(二水) 또는 백호암주(白毫菴主). 복건성 진장(福建省晉江) 출신.
1607년 진사에 급제하여 한림원 편수(翰林院編修)와 예부상서를 지냈다. 1630년 환관 위충현(魏忠賢)의 생사당(生祠堂)에 비문을 쓴 이유로 파면되었다. 글씨는 명대사대가의 한 사람으로 손꼽히며 당대에는 동기창, 형동(邢侗), 미만종 등과 이름을 떨쳤다. 산수화는 황공망을 본받아 고아하며 힘찼다. 전하는 그림이 매우 적으며 <후적벽부도권> <추경산수도> 등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