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살에 궁정에 들어가 전촉, 후촉을 거치며 한림대조(翰林待詔)를 지냈다. 일찍부터 그림으로 명성을 얻었으며 화조, 산수, 묵죽에 능했다. 산수송석(山水松石)은 이승(李升)에게, 인물용수(人物龍水)는 손위(孫位)를 사사했다. 조광윤(刁光胤)의 화조화 화풍을 연구해 자신만의 화풍을 창출해냈다. 화조의 형태와 습성을 주의깊게 관찰해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이 특징이다. 화려한 채색 화조화는 황가부귀(黃家富貴)라는 평을 들었으며 황씨체로 불렸다. 대표작으로 <사생진금도(寫生珍禽圖)> <빈파산조도(蘋婆山鳥圖)> 등이 전한다. 아들 황거채화 함께 송대 원체화(院體畫)에 큰 영향을 끼쳤다.